top of page

소리와 공동체 _ 이선영 선생님/플랫폼 37호(인천문화재단)

[섬의 노래]는 2012년 인천문화재단이 추진했던 ‘지역 공동체 문화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섬에서 열린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하나이다. ‘지역’과 ‘공동체’ 그리고 ‘문화’라는 굵직굵직한 키워드들은 소리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엮여졌다. 섬에서 상상할 수 있는 소리는 많이 있겠지만, 고영택을 포함한 젊은 작가 7명이 서해안의 작은 섬 아차도에서 특히 귀 기울였던 것은 삶의 소리였다. 강화도 외포 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을 가야하는 아차도는 23가구의 주민 34명이 담도 없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섬이다. 무인가게가 하나 운영될 뿐인 작은 동네이다. 섬에 머물렀던 한 달 넘는 기간 동안에 작가들은 4팀으로 나눠서, 한 팀에 6-7가구씩 맡아서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인터뷰했다. 그러나 주민의 삶은 섬의 풍경만큼 한가로운 것은 아니어서, 작가들은 무더웠던 지난 8월 한 달 이상을 바쁜 주민들을 따라다니며 일손도 도와주면서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들은 각자 만난 주민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소리는 뭘까에 집중했다. 이렇게 해서 섬의 소리가 CD 4개 안에 총 43개 트랙으로 담겨졌다.

 

11월 중순에 마을 선교회관에서 열린 음반 발표회에서는 총 2시간이 넘는 음반도 같이 듣고, 활동 영상도 보고 대화와 노래를 함께 하였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못생긴 고구마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간이 무대에서 열린 마을 잔치 형식의 발표회에서는 마을 사람들끼리 차례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통상 누구 어머니, 누구 아버지 등으로 호명되는 어르신들이 서로의 이름 석 자로 불러보는 것은 퍼포먼스 같이 낯선 행위로 다가왔다. 어르신끼리 서로를 ‘OO양’, ‘OO군’으로 불러보는 장난스러움 속에 누군가는 ‘아차도의 꽃 OOO’로 불리우는 영광도 누렸고, 마을 사람과 교류가 소원했던 누군가가 호명되었을 때는 그 존재가 비로소 인식되기도 했다. 작가들이 채록한 소리들 역시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것이다. 늘 듣기에 지나칠 수 있는, 그러나 문득 그 대목에 집중했을 때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소리들이다. 모든 삶의 소리가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예술은 삶의 소리 안에 존재한다. 작가들은 예술의 보다 원초적인 질료를 찾아 섬으로 왔다.

그들이 거기에서 예술을 하고자했든 아니든 간에, 어느 날 섬에 들어온 한 무리 젊은이들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으로 인해 주민들 간에, 그리고 주민 스스로와의 대화가 촉발되고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계기를 통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말로 한번 풀어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떤 형식을 통해 같이 들어본다는 것은 그자체로 치유나 해법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때 예술은 일상을 지배하는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신통력 있는 반복을 행한 셈이다. 작가들이 채록한 소리는 대부분 특정 장소에서의 일상적 행동으로부터 비롯되며, 여기에 구술이나 대화가 덧붙여져 총체적인 삶의 소리로 엮여진다.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이기에 살아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거친 뱃일을 하는 한 어르신은 ‘힘들 땐 난 뱃놈, 좋을 땐 난 뱃사람이다’라고 토로한다. 남편은 그동안 미안했던 부인을 위해 노래하고, 부인 역시 가느다란 목소리로 화답가를 부른다. 평소에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가 나오는 것은 기본이다. 16세 때 3년간 강화에서 공장 생활을 했던 어르신은 힘들었던 때 부른 노래를 문득 생각해서 불러본다.

노래를 부르는 이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는 노랫가락에 작가들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깔아주었다. 시를 즐기는 사람은 시를 읊고, 장구소리가 좋은 사람은 장구를 친다. 들려오는 소리 중에는 [86년 소 파동 당시 청와대에 보내는 진정서]처럼, 사회적 내용이 담긴 이야기도 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곤란을 겪었던 마을 주민들의 사연을 상세하게 적은 진정서를 방금 벌어진 억울한 사건처럼 진지하게 낭독하는 소리의 주인공은 25년간 마을 이장님을 하셨던 분이다. 게 잡이 하는 아이들 소리, 배고프다고 양양거리는 고양이들 소리, 좋은 일하면 서쪽나라를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전화 통화, 선착장에서 들려오는 ‘아차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방송 소리, 어릴 때 녹음했던 카세트 테입 소리 등, 음원의 종류도 다양하다. 작품 <작은 소리들>에는 섬의 고라니와 새소리, 여름 밤 풀벌레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와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예배드리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함께 들려온다. 맨 마지막 트랙에는 아차도에서 보냈던 낮과 밤의 시간의 흐름과 그것을 추억하는 여러 소리들을 편집하여 총체적으로 들려준다.

하루에 두 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을 만큼 격리된 이 장소의 얼마 안 되는 주민들은, 현대인의 대다수가 몰려 사는 도시에서와는 다른 목가적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거기 역시 자기 살기 바쁜 동시대인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주민들 대다수가 밤낮으로 바다일과 농사일로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삶의 애환이 유난히 많이 담겨 있는 그들의 육성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일만 열심히 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공동으로 닥친 어려움 속에서 공동체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란 자명하게 가정되기 보다는 애써 구축해야 하는 이상적인 가치라는 점은 작은 섬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작가들은 섬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기 보다는, 주민 스스로와 그들의 공통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통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다. 이러한 매개자의 역할을 통해 잠재해 있던 요소가 활성화된다. 물론 이러한 활성화도 영구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예술의 역할은 잠재해 있는 요소를 현실화하는 촉발자, 그리고 현실화 된 것을 의미 있는 상징으로 만들어 지속시키고, 그것을 보편화시키는 것이다.

아차도에 투입된 7명의 젊은 작가들은 매개자의 역할을 통해, 진기한 소재를 담은 독특한 현대적 예술 작품 또한 창조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안의 공공예술은 동시에 현대예술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자명하게 가정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소통 또한 마찬가지다. 소통 또한 공동체가 발견되듯이 창안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공영역에서 소통은 곧장 실험의 문제와 연관된다. 여기에서는 잉여나 장식이 아닌, 예술의 본격적 역할이 필연적이다. 그것은 이미 여기에 있는 것을 저쪽에 옮기기만 하는 것 이상의 자질이 요구된다. 7인의 작가들이 주목한 소리라는 형식은 공동체와 보다 내적인 관계를 가진다. 가장 명증하면서도 정신적으로 간주되는 시각은 자신의 몸과 분리되어 있는 객관적 대상을 전유하는 개인을 강조한다. 다양한 인터페이스들이 지배하는 스펙터클의 시대는 눈앞의 것들을, 또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조용히 주시하는 분리된 개인들(대중)을 낳았다. 반면 사방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더불어 살아있는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깜깜한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들어온 소리는 보다 원초적이다. 작품을 통해 소리들은 의미 있는 음으로 조직된다.

 

빅토르 주어칸들이 [소리와 상징]에서 말하듯이, 우리의 감각 경험 중에서 유일하게도 음은 전적으로 살아있는 생에 속한다. 그에 의하면 음은 오로지 살아있는 것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그들이 처해있는 물리적 세계에 음을 첨가한다. 이는 삶이 무생물 세계에 주는 선물이다. 작가들은 더불어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통해 공동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장 자크 루소 역시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소리와 공동체의 친근성을 예시한다. 그에 의하면 천체의 영속적인 빛의 발산은 시각에 작용하는 자연적 도구인 반면, 자연은 혼자서는 거의 음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존재들이 필요하다. 소리는 인간과 인간을 더 가까워지게 하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상상하도록 한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음성 신호들은 인간에게 인간과 닮은 존재가 있음을 알려준다. 정제되지 않은 음들, 아직 인식되지 않은 음들로서의 소리는 섬 전체가 들려주는 노래로 고양된다. 이 노래는 하나의 선율이 아니라, 여러 장소와 때, 그리고 사연들로부터 비롯된 공명으로 이루어진다. 작가들은 대부분 국내외에서 시각예술을 전공했지만, 공동체와 더욱 어울리는 감각을 시각이 아닌 청각에서 발견했다.

섬의 역사와 개인사를 포함한 서사를 구술로 채록하는 일은 시간성을 강조한다. 자신과 더불어 있는 살아있는 존재들을 인식하게 하는 소리는 시간성을 타고 펼쳐진다. 빅토르 주어칸들은 어떤 눈도 아직 시간을 본적이 없으며, 어떤 손도 아직 시간을 만져 본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귀는 시간을 들어왔다.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미지, 만질 수 없는 물질로 만들어진 유동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생각하면서 인간은 그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을 넓히고 세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이룩한다. [섬의 노래] 프로젝트는 소리라는 보다 원초적인 감각을 통해, 개인으로 분화되기 이전의 공동체적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구술문화가 지배했던 부족 사회 같은 과거로의 향수적 퇴행은 아니다. 마샬 맥루한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전자 혁명을 통해, 현대의 개인주의적 문화의 문자와 시각 편향성이 약화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자혁명이 전제하는 장(場)적 지각은 음향적, 혹은 청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 방향적인 공간성과 관련된다. 현대는 동시성(simultaneity)라는 전자적 압력 때문에, 구어적 그리고 청각적 양식으로의 회귀가 일어난다. 7인의 작가들이 섬에서 각종 전자 기기들을 동원하여 모아온, 대화와 참여를 고무하는 그 소리들은 ‘오래된 미래’로부터 들려온 소리인 셈이다.

출전; 플랫폼 37호(인천문화재단)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