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aeBBol Project ⸱ 빼뻘프로젝트
기지촌 ‘빼뻘’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장소, 시간, 기억 _고동연 (미술사가) _ 2023-2024
기지촌 ‘빼뻘’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장소, 시간, 기억
고동연 (미술사가)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경험을 정리하는 훌륭한 틀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여기는 몇 시입니까? (What Time is This Place?)』(1976)에서 케빈 린치(Kevin Lynch)는 과거, 현재, 미래가 중첩되는 ‘시간적 콜라주’의 관점에서 건축물을 설명한다. 시계, 주차 표지판, 출퇴근 시간과 같은 움직임의 리듬, 건축물의 보존과 연속성의 증거, 미래를 암시하는 상징들은 도시 풍경에서 시간적 차원을 드러내는 기재이다. 전후 서구사회의 도시는 급격한 변화, 발전, 쇠락을 경험하게 되었고, 린치의 책은 인간의 모든 구축물을 비롯하여 장소와 공간이 결국 매우 가변적이라는 사실에 착안한다. 장소나 공간은 시간과 분리된 것이 아닌 시간성의 또 다른 발현임 셈이다.
하지만 장소를 접할 때 곧잘 우리는 ‘시간’을 배제하고는 한다. 특히 비극적인 기억을 품은 장소에 대해서는 영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는 한다. 국가의 권력은 항시 특정 장소에 ‘충효비’나 ‘(전쟁) 기념비’를 세우고, 장소성을 불변하는 것으로 규정해버린다. 애국, 승리, 희생 등의 추상적인 의미를 공동체에 주입하기 위해 특정 장소가 지닌 과거의 역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장소에 대한 강력한 박제화 과정은 불가피하다. 한국전쟁 직후 캠프 스탠리 근처에 조성된 의정부 기지촌 빼뻘도 이러한 종류의 장소성이다. 전쟁 유적지가 아니기에 장소를 이상화하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반대로 기지촌은 특정한 장소로 분류될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비극의 장소로서 말이다.
2019년 빼뻘에 옮겨온 김현주와 조광희 작가 듀오는 장소성 만큼이나 시간성과 고군분투해왔다. 이들이 처음 장소에 이주했을 때 빼뻘의 유명한 클럽들은 철거되기 시작하였다. 작가들은 할머니의 집들을 방문해서 앨범 속 미군 기지가 존재할 당시 1970-80년대 과거 빼뻘의 이미지를 목격했고 가능한 한 동네 곳곳을 기록하는 과정을 진행해왔다. 2019년 작가는 빼뻘의 클럽에 연결된 뒤쪽 거주 공간을 방문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세입자가 있지 않은 쪽방을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클럽의 뒤쪽으로 연결된 쪽방에는 한때 미군 부대 클럽 종사자 여성들이 살았었다.
빼뻘에서 작업을 시작하였을 즈음부터 지난 3년간 김현주와 조광희는 빼뻘 동네 (산책) 투어를 조직해왔다. 올해 11월에도 ‘기억항해’라는 이름으로 동네 투어, 혹은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오디오 기반의 이동형 퍼포먼스’가 열렸다. 참여자들은 주최 측의 인도를 받아 함께 움직이기는 하지만 모두 개인 오디오 기기를 받아서 정해진 자리에서 설명을 듣는다. 최대한 주거 지역에서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한 현실적인 배려의 모습이다. 동시에 이것은 뻬뻘의 장소성을 규명하는 작가의 기본 태도를 반영하기도 한다. 작가는 관객이 한때 활발한 기지촌 시대 빼뻘의 현재 상태와 그 너머에 있는 다층적인 시간성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한다. 투어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빼뻘의 현재 모습에서 특정 장소에 숨겨진 과거의 역사를 오디오를 통하여 듣는 형식을 취한다. 게다가 매년 투어에서 새로운 내용이 보강되거나 수정되기도 하지만 투어에서 가장 유의미한 변화는 빼뻘의 환경이다. 이쯤 되면 투어는 과거로의 항해라기보다는 다양한 시간적 차원을 지닌 장소로의 항해이다.
실제로 빼뻘 뒤쪽 이씨 종가가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해놓은 철조망이나 중심 도로와 뒤쪽 골목 가에 놓인 건물이 새로 개축되고 철거되고 빈 가게들이 늘어난다. 빼뻘에 엄청난 재개발 바람이 불거나 미군 부대가 영구히 철수하지 않는 한 변화의 속도는 느리다. 그러나 변화가 불가피하기도 하다. 의정부 도심에 비해 느릴 뿐이다. 인식의 변화도 작지만 계속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빼뻘을 둘러싼 영화나 예술이 나오게 되면 매체의 관심을 받게 되기도 한다. 매년 김현주와 조광희가 계획하는 동네 투어를 방문하는 참여자들도 그에 따라 변화하게 될 것이다. 작지만 빼뻘을 시간성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빼뻘은 과연 현재 몇 시인가? 빼뻘의 진정한 장소성은 무엇인가?
I. 비극의 장소성과 시간성
프랑스 영화감독이자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쇼아 (Shoah)> (1985)로 유명한 클라우드 란츠만(Claude Lanzmann) 감독은 비극적인 역사의 장소들이 반드시 외형적으로 ‘비극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우슈비츠와 같이 유명 관광지가 된 장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유럽의 유대인 포로수용소들은 거의 버려지거나 인적이 드문 황량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래서 홀로코스트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면서 예전 포로수용소를 찾는 관광객은 실망하게 한다. 특정한 표식이나 분위기를 상상한 이들은 혼란스러운 감정에 빠져들기도 한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누가 슬픈 역사를 지닌 장소에 특별한 목적을 지니지 않는 한 표식을 남겨 놓겠는가?
빼뻘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전쟁 이후 수락산 자락에 만들어진 미군 기지가 2017년 군사 상호조약에 의하여 평택으로 완전히 옮겨가고 최소한의 기능만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빼뻘에는 전쟁 직후부터 존재하던 수많은 미군 상대의 음식점, 양복점, 비디오 가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클럽 등이 이주하거나 문을 닫게 되었다. 지난 7여 년간 서서히 유령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 전염병 이후 인근의 공장이나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일하던 러시아 노동자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현재는 주로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 근처의 싼 월세를 찾아서 이사 온 젊은 가족, 원래 남아 있는 어르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마저 코로나 이후에 더 뜸해졌다. 원래부터 빼뻘은 원주민의 개념이 희박한 곳이다. 역사적으로 군부대는 정착민이 없던 곳에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군대나 감옥으로 사용되던 ‘빈 땅’을 전쟁 이후 미군이 물려받은 곳들이 많다. 용산이나 이태원도 마찬가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빼뻘이 품고 있는 상흔의 흔적을 제대로 추적해보기 위해서는 희생자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빼뻘에 남아 있거나 김현주와 조광희 작가의 인터뷰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미군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이들이다. 아니 미군 클럽에서 여자 종사자로 일한 할머니들이 몇몇 아직도 빼뻘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지역에서 만나서 피해자나 가해자로 부르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가 기지촌에 거주하던 모든 이들을 희생자로 부를 수 있는가? 분명 그들 사이에 포주도 있었고 월세를 얻어서 소득을 취한 한국인들도 있었다. 기지촌 내 한국인들 사이에 계층적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 거주민이나 새 입주자들의 관점에서 빼뻘의 장소성은 적당히 억압되거나 중성적으로 남아 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이미 기지촌이 성행하던 시절에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적이지 않다고 해서 빼뻘 밖으로 보낸 예들도 있다. 한때 경기문화재단에서 마을 초입 두레방이 있던 건물을 에코뮤지엄으로 사업화하고자 하였다. 현재 두레방이 위치한 자리는 성병 진료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이고 2000년대 이후 마을 안쪽에 있던 두레방이 현 보건소 공간으로 이전한 바 있다. 미군을 상대로 클럽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들의 건강 검진이나 성병 예방 주사를 놔주던 곳이다. 현재 보건소는 기지촌 여성들 중심으로 사랑방이자 상담소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을 공간을 만인이 방문해도 되는 장소로 개방하는 것에 부담감도 따랐을 것이다. 빼뻘의 장소성을 둘러싼 역사는 직면해야 할 과거이기는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그다지 기록하지 않고 싶은 과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장소성이나 커뮤니티를 무엇으로 정의하기에 앞서 왜, 누가 그것을 정의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빼뻘이 현재 몇 시인지에 대한 답변은 역사를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해서 장소의 정체성을 규명해야 하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빼뻘의 역사적 기억은 어느 시기의 기억이어야 하는가? 시점과 시간성은 연관된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II. 빼뻘의 현재: <친애하는 나의 오늘>
<친애하는 나의 오늘>은 2021년 하반기(9월~12월)에 문화예술공간 빼뻘보관소가 진행한 주민 참여 프로젝트이다. 김현주와 조광희가 2019년부터 빼뻘 내부에서 만든 세 번째 거점 공간 ‘ㅃㅃ보관소’ (예전 힐사이드 바)에 모여서 진행된 프로젝트는 이후에 주민들에게 전시되었다. 작가는 주민분들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나눠주고 현재 빼뻘 주민이 자신의 일상을 찍어서 공유하고 그에 대한 노트를 작성하게 하였다.
<나의 친애하는 오늘>은 구체적인 현 주민의 일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아 있는 할머니 중에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한 여성 노동자일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지만, 장소에 대한 참여자의 시점은 대부분 현재에 관한 것이다. 과거의 일들은 기억하고 싶은 적당한 과거의 기억들만을 포함한다. 주로 당장 키우고 있는 화분, 화단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의 변화, 일상에서 학교와 집을 오가는 거리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루었다. 심지어 주민들은 전시를 보면서 50년 넘게 마을의 동네 풍경인데 이제까지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된 것에 대하여 기뻐한다.
그렇다고 모든 시점이 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동네의 좀 높은 곳을 올라가서 전체 동네가 조망하는 관점을 유지하게 되는 경우 참여자의 시점 또한 여기, 지금에서 과거로 확장되었다.
예전에 우리 집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집들이 가득했는데 지금은 휑해졌다. 거기서 사셨던 분들이 다른 곳으로 많이 이주하셨다. 친한 분들이 많았고 보고 싶은 분들이 많다. 이곳에 살고 싶었지만, 월세가 비싸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분들. 외국 사람들에게는 방을 많이 임대해 줬는데 정작 주민들이 이사 갈 곳은 부족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에게 중요한 사실은 빼뻘의 자연환경이 좋다는 것이다. 빼뻘은 그들에게는 영원히 존재했으면 하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이 동네가 사라질지도 몰라 안타깝다. 이곳이 재개발된다면 월세가 올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 계속 살고 싶다. 살 수 있다면. 불편한 것이 많지만 빼뻘은 자연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집 앞의 화단이나 길거리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 비해 동네 전체를 조망하는 듯이 높은 지대에서 사진을 찍게 되면 시야가 넓어진다. 시간성도 비례해서 확장된다. 집 앞에 놓인 꽃이나 장독대에서 빼뻘의 멀지 않은 과거의 역사가 등장하게 된다. 물론 불안정한 미래를 포함해서 말이다. 과연 그 많은 빌딩은 어디로 갔을까? 빼뻘의 재개발에 대해서 빼뻘 내에 토지를 가진 이들과 세입자 간에 분명 견해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친애하는 나의 오늘>에서 거주자 또는 참여자의 사진과 글은 현재 자신의 주위 환경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를 즐기고 빼뻘이 지닌 물리적인 환경의 장점이 부각되어 있다. 이것은 빼뻘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 즉 기지촌의 아픈 기억을 강조하려는 입장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III. 빼뻘의 과거: <기억항해> 1
그렇다고 해서 빼뻘의 현재 거리에서 미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5년간 빼뻘 동네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주민들과 소통해온 김현주의 글을 살펴보자.
다시 큰길로 나와 직진/ 늘 잠겨있던 골드스타 클럽 문 안을 열자 긴 복도/ 자줏빛 출입문 문 위에 쓰인 글씨/ ‘Under Ground Welcome to ○○○’ / 벗겨진 종이 안에 붙어있던 내국인 출입 금지/ 넓은 홀 안 붉은색 의자와 소파, 먼지 앉은 당구대/ 건물 기둥에 붙어있는 스티커/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따라서/ 성매매와 관련된 채권, 채무 관계(선급금, 사체, 이자 등)는/ 법적으로 무효합니다. – 여성가족부 장관
<친애하는 나의 오늘>이 지금 현존하는 것들에 관한 기록이라면, 김현주의 글은 빼뻘의 과거 모습에 집중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벤트이다. 작가는 <기억항해>를 ‘이동형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소개한다. 이것은 특정 장소와 연관된 역사나 기억을 퍼포머가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를 특정 장소에서 관객에게 재연해주기 위함이다. 항해를 수동적인 차원에서 능동적인 차원으로 변화시켜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의 기지촌을 점유하였던 이들의 신체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을 대부분 방문자로서 퍼포머들이 상상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구연해낸다. 관객의 관점에서 어렵지만 이러한 퍼포먼스는 결국 나 자신이 서 있는 시간대 이상의 다른 시간대를 상상할 때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
투어는 초입에 있는 두리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왼쪽으로 그 미군 부대, 왼쪽에 큰길을 따라 수락산 기슭을 거쳐 미군 부대 후문을 거쳐 중심 도로로 되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어떤 건물들은 사라진 상태이고 어떤 건물들은 비어 있다. 관객은 비어 있는 가게나 장소를 본인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빼뻘의 과거를 상상하는 외부 참여자들의 시도가 오히려 빼뻘의 장소성을 지나치게 축약시키거나 화석화시킬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동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이에 <기억항해>는 최대한 장소에 대한 통상적인 설명을 절제한다. 대신 장소와 연관된 거주민의 경험이나 이야기를 삽입한다. 빼뻘의 역사성보다는 단편적이지만 과거를 회상하는 거주민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게 되면서 관객을 해설자와 함께 과거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퍼포머들의 댄스는 관객의 호기심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 사용되는 중요한 기재이다. 예를 들어 초반에 행해진 비교적 긴 퍼포먼스는 수락산으로 올라가는 길 초입에서 행해졌다. 이곳은 한국 여종업원에 대한 상해 사건이 자주 일어날 때마다 거론된 곳이다. 심지어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어른들은 수락산 기습으로 가는 이 지역을 위험하다 여겨왔고, 여성이 혼자 가는 것을 꺼리기도 하였다. 단지 수락산을 애용하는 외지인들만 두려움이 없이 사용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퍼포머의 움직임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한 가지는 장소에 대한 관객의 관심을 끄는 일일 테고 다른 한 가지는 장소에서 일어났을 법한 과거의 사건을 재연하는 일이다. 이탈하거나 도망가거나 몸을 비틀거리나 하는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퍼포머의 움직임은 과거의 어떤 사건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무언극과 같이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서 일종의 고통이나 갈등의 순간을 유추할 수는 있겠으나 동작 자체는 훨씬 추상적이다. 투어 도중 참여자들이 장소의 의미에 대하여 얼추 예상하거나 상상하게 만드는 정도의 기능을 하게 된다. 오히려 퍼포먼스 동작의 모호함은 당시에도 기지촌의 중요한 고객인 미군의 심기 보호를 위해서 여종업원 살인 사건은 억압되었고 통상적으로 모호한 채로 주민들에게 회자되는 정도로 남아 있었다는 서글픈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IV. 빼뻘의 과거: <기억항해> 2
<기억항해>의 또 다른 클라이맥스는 클럽 언더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다. 기지촌에서 클럽이 차지하는 물리적인 크기나 역사적인 의미를 고려했을 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가 펼쳐진 공간을 직접 방문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게다가 클럽은 오랫동안 닫혀 있었고 곰팡이가 그득했다. 곰팡이가 그득한 지하 클럽 공간은 실질적인 위협으로 관객을 엄습한다. 더 이상 과거라고 거리를 두기에는 관객의 측면에서 보자면, 신체적인 불편함이 상당했다. 과거의 잔재가 비로소 현재 관객의 신체와 실제로 만나고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지하에 있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은 평상시 외부인들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는다. 외부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숨겨진 과거의 기억과도 같은 곳이다. 빈 가게들이 버려진 과거의 역사에 해당한다면, 이 공간은 버려져 있고 접근이 금지되어 있지만, 위험한 채로 엄연히 존재하는 불편한 기억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공간은 2개의 큰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흥미롭게도 어두운 공간에서 관객이 켜주는 플래시 라이트를 조명 삼아 공간 내부에서 퍼포먼스를 벌어진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내부 실내장식이다. 기지촌의 클럽 외관이나 타이틀은 최대한 미국의 중소도시를 그대로 옮겨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미국식으로 꾸려진다. 미군 기지의 군인들에게 기지촌의 클럽은 단순히 술을 마시고 욕망을 달래는 것 이상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곳이다. 이에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의 감독 박경태는 기지촌을 “미국의 유사타운”이라고 부른다. 거대한 당구장이 한쪽에 위치하고 바와 댄스플로어가 함께 있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구조는 한국의 나이트클럽과는 확실히 달라 보였다. 미국의 클럽이나 바는 음악 밴드가 연주하는 플로어, 당구대, 바, 주크박스 등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다기능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데, 언더그라운드 클럽도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벌어진 퍼포먼스는 좀 더 강렬한 양상을 띤다. 남녀 간의 더 밀착된 춤이 전개되고 발을 구르는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진다. 미군 병사와 여자친구 혹은 접대부 등의 이성애적인 관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밀착된 두 댄서의 관계성은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과거의 이벤트를 더욱 현재의 순간으로 끌어들여서 바라보도록 관객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래도 춤이 강렬할수록 관객의 집중도가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은 결국 장소가 지닌 특수성에 기인한다.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는 곰팡이는 물론이거니와 클럽 내 한쪽 벽면을 에워싼 거울에 비친 현재의 모습을 관객은 바라보게 된다. 만약 퍼포먼스가 과거의 어떤 순간을 재연하기 위한 일종의 허상이라고 한다면, 거울은 그 허상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다시 비추는 기재이다. 여기서 과거와 현재의 내가 만나게 된다. 곰팡이의 냄새가 강렬하게 현재 관객의 신체를 파고들어 괴롭히듯이 거울은 어두운 실내를 비춰줌과 동시에 과거의 한순간에 위치해 있는 나를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빼뻘의 과거와 현재가 유리 화면 위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유리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반사 효과가 공간의 깊이감을 혼동시키는 것은 덤이라면 덤이다.
V. 빼뻘의 시간성과 관점
『여기는 몇 시입니까?』의 저자도 주지한 바와 같이 특정 장소나 공간이 지닌 가변성이 클수록 우리는 장소를 시간성과 연관시켜야 한다. 언제적 장소인가? 나아가서 장소를 특정한 맥락에 위치시키는 그 시간성은 결국 장소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로 귀결된다. 『여기는 몇 시입니까?』의 저자 린치는 7가지로 시간을 구획하는 단위를 정리해놓고 있는데 시기, 주기, 동시성, 반복성 이외에 마지막으로 주관적인 성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장소를 시간성과 결합해서 접근할 때 결국 주관적인 관점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는 습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부연하자면, 인간은 장소를 바라볼 때 결국 자신의 필요와 관점을 투영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의 빼뻘을 기억해야 하는가? 부연하자면, 빼뻘의 주민, 의정부 시청, 문화재단, 예술가, 빼뻘의 땅을 지닌 건물주나 지대 주, 우리 사회 각각 빼뻘의 어떤 모습을 기억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관점들 사이에서 예술가는 어떤 시간대의 빼뻘을 선택해야 하는가?
빼뻘의 변화를 원하는 쪽과 변화를 원하지 않는 쪽들은 빼뻘이라는 장소를 이해할 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선택하게 마련이다.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인식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경제적인 관심사를 더 잘 반영하기도 한다. 아니 땅을 가지고 있는 주인들은 빼뻘의 과거로 더 많은 사람이 여행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빼뻘의 슬픈 역사가 땅값을 하락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땅 주인들은 미래의 빼뻘에만 관심을 둔다고도 할 수 있다.
투어 맨 마지막에는 참여한 외지인 대부분과 소수의 지역 주민이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서 소통하는 시간이 있었다. 돌아가면서 이번 투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와서 감히 과거 빼뻘의 역사를 끄집어내고 상상해보려는 발칙한 이들과 빼뻘을 현재 시점에서 바라보고 살아갈 희망을 이어가는 지역민이 서로 만났다. 한쪽은 이 공간을 최대한 과거의 시점에서 접근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지금 시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적어도 투어에 참여하기 위해서 먼 곳에서 빼뻘을 찾았을 때 참여자의 의도는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입장이 서로 공존할 때 아니 공존할 수밖에 없을 때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작가는 모든 장소의 풍경이 시간의 연속성을 품는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오디오 속의 목소리가 과거를 기억해내는 것이 아닌 현재의 시점에서 소환해내기를 희망한다고 부연한다.
오디오를 통해 과거의 목소리가 아닌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현재를 불러내고 싶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클럽이라는 장소는 응고되거나 고체화된 상태의 과거가 아닌, 응축된 과거가 억눌려지거나 방치된 상태, 그리고 인간 의지 없이 현재라는 시간성과 함께 변화되는 장소성에서 다시 그 장소성에 묶여 그 틀을 뚫고 나가지 못하는 생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러나 뻬뻘에서 작가의 과거를 현재의 시점에서 끌어내고자 할 때 여러 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을 말하고자 할 때 결국 과거를 등한시할 수 없게 되고 동시에 과거에만 매몰될 수도 없다. 게다가 뻬뻘과 같이 비극적인 역사가 억압된 상태로, 혹은 외지인의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면 과거를 기억하려는 노력은 그것이 온전치 못하더라도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로 작가 김현주와 조광희는 지난 5년 동안 빼뻘에 대한 아카이브를 만들고 기록 작업을 하는 동시에 빼뻘의 주민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빼뻘에서의 경험을 외부 관객이나 넓은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왔다. 전시과 출판 작업을 통하여 미술계 관객뿐 아니라 의정부 시민이나 일반 관객과도 소통해왔다. 그때마다 언어를 달리해야 했고 관점을 달리해야 했다. 동시에 지난 3년간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면서 김현주와 조광희에게 빼뻘의 아름다운 현재도 놓칠 수는 없다. 빼뻘은 누군가가 삶을 영위하면서 희망을 품은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한국 현대사가 지닌 상흔을 그대로 품고 있는 연구나 기록의 대상이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욕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예술가가 어떠한 시간성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순치 않다. 한편으로 김현주와 조광희는 주민들과 호흡하고 거의 출근하다시피 공간을 운영하면서 뻬뻘의 내부자가 되었다. 내외부의 구분 또한 무의미한 것일 수 있겠으나 결국 현장에서 다양한 주민들의 시각에 대해서 고민해보다 보면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기지촌의 역사를 고려해볼 때 후기억 세대의 예술가가 뻬뻘의 역사를 재탐방하게 될 때 위치 선정의 문제는 태생적인 고민거리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술가와 관객은 외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계층적으로 말이다. 과거의 시점에 일어난 비극적인 역사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외지인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그리고 커뮤니티의 안과 밖에서 자유자재로 과거에 대하여 과거를 기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외지인 말이다.
따라서 <기억항해>는 그러한 거리감들로부터 출발한 어찌 보면 미안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특한 거리감 때문에 예술가는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곰팡이가 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지하에서 퍼포머가 프로젝터로 빛을 밝혀 장소를 나타나게 하고 동시에 “관객이 스스로 내는 빛에 의해 여전히 역동하고 있는 지표 아래에서의 기억, 의식들을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김현주와 조광희의 <기억항해>는 걷기, 구경, 나아가서 자기 모습을 마주한 관객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의 빼뻘과 과거 여행을 자처하는 외지인이 만날 구실과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댄서들이 발을 구르면서 켜켜이 묵혀두고 감춰둔 장소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켜주지 않았다면 폐허는 더 폐허의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우리의 기억과 양심의 영역에서 말이다. 물론 한시적인 예술적 경험이 어떠한 역동적인 경험, 즉 과거, 현대, 미래가 암시되는 상태로 나아갈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오히려 계획하고 규명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일 수도 있다. 거리감을 애써 좁힐 수 있다는 낙관론 자체도 문제이다. 단 현재 기지촌이 급속도로 경제적인 동력을 잃고 혼재된 상태로 남아 있는 이때 김현주와 조광희는 예술가만이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소명을 다해가고 있다. 곰팡이가 그득한 클럽 지하에서 거울에 비친 외지인/관객/비극적인 기억의 후세/ 내지인들이 각자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한다. 당신들이 기억하고자 하는 뻬뻘의 시간대는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