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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손, 만인의 삶을 이야기하다. _ 박수진(독립큐레이터)

만인의 손, 만인의 삶을 이야기하다.

 

 

박수진(독립큐레이터)

 

김현주, 조광희 작가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일상 속 공공성을 찾는 작업을 해왔다. 이들 작가는 평범한 사람, 평범한 일상, 평범한 현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각각의 꼴대로, 평범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삶의 내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또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표현한다. 그렇게 표현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보다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 현실 사회에 발 딛고 있기에 더욱 날 서 있다.

이들 작가의 ‘손’에 대한 관심은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손’을 중심으로 한 작업은 <<손손수수 :108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만드는 손의 대화법>>(도봉문화재단/도봉구청, 2019)에서 촉발되었고 이후 ‘손의 대화’ 퍼포먼스로 발표되고 <<만인의 손 : 손-기억과 미래를 더듬다>> 프로젝트(경기문화재단, 2021)로 진화되었다. <<손손수수>>는 다양한 사람들과 손이 하는 이야기에 주목하고 이들과 나눈 손의 대화를 기록했는데, 이번 <<만인의 손>>에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각각에 좀 더 집중했다. 인터뷰이들은 자신의 손에 대해,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고 손 퍼포먼스로 자신의 삶을 재현한다. 스스로 재현한다는 것은 자신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자기 주체성을 정립하는 행위이다. 이 지점에서 <<만인의 손>>은 재현의 정치학이 작동하는 프로젝트이다.

 

- 대화의 기술

<<만인의 손>>은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이다. 인터뷰는 대화를 매체로 하는데, 대화는 말과 달라서 화자와 청자의 위치가 끊임없이 바뀐다. 또한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 다양한 환경 등에 따라 대화 참여자간의 위치, 내용과 의미 등도 미묘하게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만인의 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이들 작가들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서로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지 무척 고심하며 인터뷰가 이뤄지는 환경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고 한다.

전작인 <<손손수수>>는 예술과 무관한 행정기관 건물인 도봉구청 한 켠에 프로젝트 임시 공간을 마련하고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이 그 공간으로 찾아오게 했다. 그 공간에서 작가들은 매번 두 명의 참여자들과 만났다. 반면 <<만인의 손>>은 다양한 삶을 살아온 30여 명의 프로젝트 참여자를 섭외하고 그들 공간으로 작가들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가 매번 바뀌었다. 말하자면 <손손수수>에서는 작가의 공간에 참여자들이 초대되었다면 이번 프로젝트 <<만인의 손>>에서는 참여자의 공간으로 작가들이 초대된 것이다. 대화가 이뤄지는 장소의 변화는 작가와 참여자 간 대화의 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하자면 프로젝트가 이뤄지는 장소의 호스트가 누구인가는 대화의 관계성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만인의 손>>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호스트로서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자기 삶을 스스로 재현함으로써 자기 삶을 주체화하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이것이 대화의 기술이라 하겠다.

 

 

- 손을 이야기 하다.

왜 손일까? 뻔한 이유일 수 있겠지만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차이를 만들어낸 지점에 손의 사용이 있고, 인간의 손은 노동하는 기관이며 동시에 삶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신체 기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어떤 노동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에 손은 정직하게 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손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있고 꿈꾸는 미래가 있다. 이제 손은 삶을 이야기 한다.

작가들은 <<만인의 손>> 프로젝트에 세상의 모든 손, 세상의 모든 삶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첫 번째 시도로 서른 명의 손과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10대 청소년에서부터 랩퍼의 꿈을 접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청년, 한때는 예술가를 꿈꿨으나 지금은 예술행정을 하는, 또는 예술가였으나 지금은 버스 운전하는 등 과거와 현재를 다르게 사는 중장년들, 70대임에도 아직 현업 중인 이발사, 80대의 의정부 향군클럽 지배인, 농부, 신부, 지역사회활동가, 예술가 등등 다양한 세대, 다양한 직업,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 손이 있다. 작가들은 이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합니까’ 그리고 ‘십년 후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합니까’. 두 개의 질문은 인터뷰이들 각자 현재 삶의 토대인 과거의 기억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바라는 미래를 이야기하게 한다.

<<만인의 손>>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각각의 작품은 1분 내외의 짧은 퍼포먼스와 자신의 손이 하는 일, 손의 기억, 손의 촉각, 손의 후회, 미래의 손에 관한 긴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서른 명의 인터뷰이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선택,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해오고 있는 익숙한 손동작이지만 카메라와 조명 앞에 선 아마추어들의 짧은 손 퍼포먼스는 노련하지만 어색하다. 이들은 나와 우리, 개인과 사회, 삶과 예술 사이를 진자하고 있다. 30여 개의 영상과 인터뷰는 개인들의 이야기지만 현실을 관통하고 있기에 우리 시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현재 손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인터뷰이들이 행하는 손동작은 우리 사회에는 어떤 다양한 종류의 노동이 있는지 또 어떤 형태의 노동이 가장 많은지 유추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손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질문에 많은 이들은 키보드 치는 손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시대 노동하는 손을 대표하는 동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인터뷰에서도 다양한 개인들에게서 공통적인 답변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과거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60대, 70대, 80대 노인들은 굴곡진 근현대 사건들을 어떻게 헤치고 살아냈는지, 중장년층들은 꿈과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또 청년들은 어떤 불안과 그 속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를 이야기 한다. 한국 근현대 역사적 사건들이 이들 삶의 기억 속에 있고 근 흔적들이 손에 남아있다.

 

- 손, 삶의 흔적

손이 한 일은 살아온 삶이다. 그리고 삶은 신체에 흔적을 새긴다. 그래서 신체에 남겨진 상처는 살아온 날의 기억이며 기록이다. 때론 기억조차 없는 사건이지만 신체는 성실하게 흔적으로 개인의 일상과 당시 역사를 기록한다.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노동은 일기처럼 손에 굳은살을 만들며 제 삶에 맞춰 손을 변형시킨다. 손은 자신의 노동과 삶을 고스란히 투영한 신체기관으로 바뀌며, 그렇게 노동은 신체를 변이시킨다.

<가위만 있다면>에서 70대 이발사는 서러웠던 유년의 기억, 유신헌법으로 뺏긴 노동, 도시철거민으로 낯선 개척지로의 이주 등 오래된 신문 기사 같은 이야기를 하며,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가위와 자신의 손뿐이라고 한다. 가위를 쥔 그의 손은 오랜 반복 노동으로 가위와 손이 하나의 신체기관처럼 기계 신체로 진화했다. <재주를 덜 부리게 하던지, 못 부리게 하던지, 죽여 버리던지>에서는 군대에서 손가락이 잘린 60대 연출가의 손이 자신의 한 일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연출가로서 살아온 기억과 함께 냉전시대 분단국가 한국이 있다. 이처럼 60대 70대들 손에는 전쟁을 딛고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룬 개발도상국 한국의 역사가 있다.

거친 손, 굳은살, 상처는 주로 노동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에 비해 현재 우리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노동하는 손을 존중한다. 이 같은 변화는 많은 인터뷰이들이 기억하는 손으로 삶의 근육이 잡힌 손을 이야기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과거 연극인으로 생계를 위해 다양한 노동을 했던 40대 문화행정가는 손에 남은 작은 상처들, 굳은살을 보며 과거의 힘든 시기를 잘 버텨냈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한 사람을 위한 손>) 그에게 거친 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한 시간의 훈장인 것이다. <익숙한 돌>에서 50대 조각가는 유학시절 작업하다 다쳐서 변형된 손을 이야기하면서, 기억하는 손으로 학창시절 미술선생님의 손을 떠올린다. 그는 손가락 마디마디 근육이 생긴 미술선생님의 작은 손을 잡았을 때 감동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다양한 경험에서 일하는 손은 두툼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동으로 변화한 신체, 그런 손이 귀한 손이라 한다.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 역시 그런 귀한 손, 그리고 안타까운 손을 말한다. 그는 산업재해로 손이 잘려서 손이 없었던 노동자의 손(<토닥토닥>)을 기억한다고 한다.

삶의 흔적은 신체의 기억으로 남는다. 사람들은 살면서 꿈 대신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도 과거에 꾸었던 꿈과 다른 일을 하며 과거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의 손은 과거의 꿈을 기억하고 있다. 30대 축제기획자는 청년시절 장구를 치며 리듬을 만들어내던 손(<어떤 리듬 I>)으로 키보드를 치며 또 다른 리듬(<어떤 리듬 II>)을 만들어낸다. 미대를 나와 시각디자이너로 일했던 과거를 가진 50대 버스운전사는 매일매일 같은 노선을 반복하며 도는 현재의 노동(<순환여행사>)은 안정된 생활을 가능하게 해서 만족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손은 과거의 기억이 미래에 도달하기(<폐유-있는, 없는 얼굴들>)를 바란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손은 꿈과 노동이 분열되어 있으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 미래는 서로 어긋난 듯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십년 후의 손이 지금과는 다른 현재,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 손, 춤이 되다.

김현주, 조광희 작가의 일련의 ‘손’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는 인터뷰에서 퍼포먼스로 진화했다. <<손손수수>>에서 작가와 참여자가 맞잡은 손, 노들섬에서의 실시간 영상 퍼포먼스에서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 춤추듯 프랑스 예술가의 손을 맞잡았다. 이번 <<만인의 손>>에서는 참여자 스스로 자신의 손과 신체를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이들의 움직임은 무용가의 춤, 예술가의 퍼포먼스에 비해 다듬어지지도 세련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삶, 자기 노동, 자신의 기억과 미래를 스스로 재현함으로써 날 것이 가지는 진솔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진정성은 있으나 거친 아마추어들의 몸동작을 하나의 퍼포먼스로 완성시키는 데에는 화음이나 서사가 배제된 음악이 한 몫 했다. 또한 각자 자기의 이야기와 몸짓을 표현한 30여 개의 손 퍼포먼스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내는 데에도 음악은 큰 역할을 했다.

신체의 불편함은 이들의 춤에 문제되지 않는다.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으나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었던 60대의 시인이 손으로 시를 짓는다(<다시 태어난 시詩>). 아주 작은 손 움직임만 있는 퍼포먼스지만 어떤 큰 동작, 큰 움직임보다 공간을 울리는 힘이 크고 그의 시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담아낸다. 특히 시를 짓는 손동작에 맞춰 들리는 생활 소음 같은 음악은 그의 시가 현실에 발 딛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춤으로 만든다.

 

- 만인의 손, 손과 손을 잡다.

김현주, 조광희 작가는 <<만인의 손>> 프로젝트에서 서로 다른 삶을 일궈오고 다른 꿈을 꾸는 무수히 많은 손들을 통해,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고 서로 다름이 공존해야 하고 모두 존중받아야 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손에 주목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양한 접촉면을 가진 삶을 살아왔는데, 이들 대부분은 십년 후 손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른 사람을 잡아주고 도와 줄 손, 서로 다름을 연결하는 기관으로서 미래의 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어느 인터뷰이는 말했다. “더불어 살아가려면 다 연결돼야 하는 거잖아요? 좋은 세상을 혼자서 만들어 갈 수 있겠어요?”(<풀 향기를 촉각하는 손>)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서로의 손을 맞잡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손은 사람의 손 뿐 아니라 식물도, 동물도, 바위도, 바람도 서로 잡아주고 연결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만인의 손>> 프로젝트가 만 사람의 손을 넘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연결되는 프로젝트로 진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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