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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귓속에 묻힌 묘지들 _ 이선영 선생님 리뷰

내 귓속에 묻힌 묘지들 
 
김현주의 작품 속에서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신이다. 분신이란 주체의 분열상을 말한다. 역사가 신화나 종교 못지않은 거대한 서사의 하나임을 생각할 때, 분열이라는 정신분석학적 소재로 거대서사를 비춰보는 것은 특이하다. 후기 구조주의자들에게는 프로이트 또한 헤겔이나 마르크스 못지않은 거대 서사의 주인공이지만, 정신분석학은 여전히 사회보다는 개인이나 가족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작품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뚫린 통로 앞에 선 주체와 그 반영상이라 할 만 한 분신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인공과 분신은 말을 하지 않지만, 수수께끼 같은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숲으로 이동하는 것은 지금보다는 더 자연적인 환경에 살았을 수 십 년 전의 사람들의 터전을 향하는 것이다.
매미 소리 크게 들리는 여름 숲의 우거진 수풀들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은 한국전쟁 당시 몰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가족이다. 시체들이 매립된 장소를 알려주는 밧줄, 희생 당시에 폭포수같이 흘렀을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천 등, 암시적인 사물들이 인물과 함께 행동한다. 무대는 숲으로부터 계곡으로 옮겨진다. 이미 그곳에 와있는 망자들과 만난 여자는 가족사진을 찍듯이 함께 포즈를 취한다. 계곡물에는 그들의 반영상이 비춰진다. 숲이나 계곡은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는 무대인 고속도로 터널과는 다른 영역, 즉 자연이다. 자연에서 캐낸 진실은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에 해당된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분열상인 분신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죽음에 이르는 폭력이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가 [거울의 역사]에서 말하듯이, 분신 이야기는 나르시소스의 신화처럼 종종 죽음으로 끝난다. 폭력과 죽음에 얽힌 분신의 테마는 남과 북이 원래 한민족이었음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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