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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뺑, 뺑부름' _ 오수환 [공유] (랩퍼 / 의정부 문화도시 청년 아키비스트)

1900년대 초, 현 의정부시 송산로 999번길 일대는 '뺑'이라는 잡초로 뒤덮여있었다. 주변 마을의 어린 아이들은 매해 대보름이면 일대를 뒤덮은 뺑을 꺾어와 자기 나이만큼 묶어 대를 만들었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달이 차오르면 친구들과 함께 그 ‘뺑대’를 태우는 놀이를 했다. 유분이 많은 뺑 열매는 불에 닿을 때마다 '타닥, 타닥' 경쾌한 소리를 내며 터졌고, 어린이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고산동 일대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빼뻘. 이 마을에서 90년 이상을 살아온 할아버지는 이 이름이 뺑이 많은 밭, 곧 '뺑밭'에서 유래했다 말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마을 일대에 미군부대가 들어서고, 뒤이어 기지촌이 생겨 전국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들자 마을의 성격은 빠르게 변해갔다. 마을이 간직하고 있던 여러 전통은 빼뻘 일대를 뒤덮고 있던 뺑처럼 아주 사라져버렸다.

이제는 증언할 사람도 얼마 남지 않게 된 빼뻘의 뺑 이야기. 빼뻘마을에서 작품 활동과 문화 교육을 병행하는 김현주 작가는 오래전 마을에서 사라진 이 잡초 이야기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는 오랜 세월 끊어져 있던 뺑을 다시 한번 빼뻘로 불러들여 우리가 잊고 살던 가치들을 다시 깨우리라 다짐했고, 지난 21일 ‘오늘도 평화로운 의정부’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뺑, 뺑부름> 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유독 쌀쌀해진 날씨, 빼뻘의 구제 옷 가게 자리였던 김현주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미술 작업실은 무겁고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작업실은 마치 마을 사랑방 같았다. 문을 열면 보이는 테이블 위엔 대를 만들기 위한 짚 풀이 가득했고. 벽면엔 작가의 지난 전시작과 다양한 오브제가 쌓여 있었다. 그 위로 마을 주민들이 쓴 소원이 적힌 종이가 붙어 공간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함께한 빼뻘 주민들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뺑이 없어 대신 준비한 짚을 열심히 엮는 중이었다. 나이만큼 엮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은 주민은 '내 나이만큼 엮으면 오늘 안에 못 엮는다'라며 장난 섞인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재확산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뺑대를 함께 태우는 놀이까지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기지촌이라는 마을 특성상 주민 간 앙금이 유독 깊은 빼뻘마을에 김현주 작가가 불러오고자 했던 것은 뺑대를 태우는 행위 자체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준비하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한뜻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추억을 나누는 훈훈한 풍경이었으리라 생각한다. 함께 도와 짚을 묶으며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던 오늘의 순간처럼.

뺑을 태우는 놀이는 오직 의정부 고산동 일대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던, 발굴하고 지켜나가야 할 독특한 전통이자 자원이 아닐까?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민속놀이도 소중하지만 앞으로 의정부 축제의 시작을 이 뺑놀이로 알려보는 것은 어떨까. 더는 빼뻘마을에서 뺑이란 풀을 볼 수 없지만, 이날 함께한 빼뻘주민들과 아키비스트의 심장 속에서 오랫동안 마을을 떠나야만 했던 뺑이 다시 자라기를, 잊힌 전통과 현재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본다.

_ 오수환(의정부 문화도시 청년 아키비스트/랩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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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 뺑부름-수환 오 아키비스트

1900년대 초, 현 의정부시 송산로 999번길 일대는 '뺑'이라는 잡초로 뒤덮여있었다. 주변 마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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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뺑, 뺑부름-수환 오 아키비스트 by 의정부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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