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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빼뻘마을 – 흩어진 기억을 그러모아 / 서울대 저널_천세민 기자

ㅃㅃ 마을, 흩어진 기억을 그러모아ㅃㅃ 보관소 김현주 작가를 만나다

등록일 2025.06.10 21:16l최종 업데이트 2025.06.12 15:21l 천세민 기자(chunsemin011@snu.ac.kr)

  빼뻘마을 입구에서 큰길을 따라 올라가면 ‘ㅃㅃ 보관소’라고 적힌 빨갛고 동그란 팻말이 보인다. 그 아래 ‘WELCOME(환영해)’이라고 적힌 흰 팻말과 커다란 창문이 잇따라 눈에 들어온다. 김현주 작가가 머무는 곳이다. 김 작가는 2019년 빼뻘마을과 연을 맺고 주민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해 오고 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만두를 빚는 ‘두레방과 함께하는 만두 대잔치’ 워크숍과 두레방 ‘언니들’의 그림을 모은 전시회를 진행했다. 2023년엔 이동형 공연 「기억 항해」를, 그다음 해엔 「거품, 소음, 웅성거림」 전시를 열었다.

 

  누군가는 빼뻘마을이 쇠락해 가는 기지촌 마을이라고, 재개발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현주 작가는 「기억 항해」 전시 도록에서 ‘내게 빼뻘은 사라져야 하는 곳이 아닌 기억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장소’며, 이곳에 ‘귀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들’과 ‘감각해야 하는 장소’가 남아있다고 힘줘 말한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자신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는 그에게, 빼뻘마을에서 작업을 이어나가는 이유를 물었다.

「거품, 소음, 웅성거림」 프로젝트 제목 뜻은. 

 

김현주  탄산수를 부으면 경쾌한 거품이 일어난다. 거품이 일 때 나는,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소음에서 빼뻘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상했다.

 

빼뻘마을에 거점공간을 만든 이유는.

 

김현주  주민들에게 빼뻘마을은 제 모습 그대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다. 이들이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또 빼뻘마을은 기지촌과 마을재생사업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내가 하는 작업이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이곳에 머물게 된 이유다.

굉장히 이질적인 이들이 마을에 모여 살고 있는 것 같다.

 

김현주  빼뻘마을에 처음 온 이들은 대개 기지촌여성과 마을 주민을 구분해 생각한다. 이러한 구분은 마을의 생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관점이다. 다 섞여있다. 기지촌여성에서 포주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를 무엇이라 부를 텐가. 또 기지촌여성이었다가 결혼 후 평범한 가정을 일궜다면, 이 사람은 기지촌여성과 주민 중 어느 쪽인가. 사람의 생애는 계속 변화한다. 삶의 한 단면만 보고 그를 규정할 수 없다. 기지촌여성 역시 마을 주민의 일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을 주민을 만나며 무엇을 느꼈나.

 

김현주  주민들과 대화하며 이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말을 기록해 여기저기 소문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록되지 않은 말이 마을 밖으로 나아갈 때 더 많은 이들이 빼뻘마을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 작업하러 온 이들이 빼뻘마을을 단지 기지촌이나 슬럼화된 동네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마을 주민과 외부인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김현주  원래 그런 재주가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되더라. (웃음) 외부인 입장에서는 빼뻘마을이 가진 다양한 문제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빼뻘마을에는 기지촌이라는 점을 숨기고 싶어하는 이도, 이곳을 더 나은 삶을 위해 거치는 중간 지점으로 여기는 이도 있다. 다양한 삶의 서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외부인에게)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업할 때 어떤 식으로 주민들과 관계를 맺나.

 

김현주  지역은 내 통제 밖에서 매 순간 변화한다. 수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움직이기에 내가 이곳에 몇 년을 머물러도 모든 걸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모르는 관계기에 질문할 수 있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서로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할 수도 있고.

동네를 놀이공간으로 사용하는 것과 주민들을 일방적으로 대상화하는 건 다른 듯하다.

 

김현주  너무 다르다. 화분 하나라도 ‘너무 예쁜데 사진 촬영 좀 해도 될까요?’라고 묻는 것과 아무 말 없이 찍는 건 다르다. 좋은 의도였어도, 찍히는 입장에선 불쾌할 수 있다. 자신이 사는 곳이 함부로 노출되는 건 누구라도 꺼리지 않겠나. 설령 모든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작업을 시작하기 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맺는 게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두레방을 중심으로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까지의 과정은.

 

김현주  기지촌여성과 관련된 여러 장소를 답사하고 자료를 살피다가 남들이 만들어둔 게 아니라 온전히 내 피부에 닿은 것으로 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령 작업에 실패해도 사람과 장소에 관해 작업할 때는 내가 그곳에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두레방에 왔는데 나 같은 작가들이 많다 보니 바쁘신 것 같았다. 천천히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하고 클럽이었던 곳에 거점공간을 차렸다. 그곳에서 두레방에 가지 않는 ‘언니들’과 주변에 살던 원주민과 외국인 노동자 등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지역에 스며드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웠다. 이후 두레방이 의정부시로부터 이전 요구를 받고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며 본격적인 아카이빙을 시작했다.

두레방의 이야기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까닭은.

 

김현주  기지촌에 대해 전혀 모르던 이들도 이곳을 거니는 동안 빼뻘마을과 두레방의 역사를, 마을 재생이 의미하는 바를 눈치챌 수 있다. 기지촌여성을 대상으로 성병 관리를 한 곳이 전국에 의정부와 동두천, 두 군데만 남아있다. 사라지면 안 된다. 직접 와서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사는 곳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보존할 것은 보존하고, 바꾸더라도 모두의 삶을 고려해 더 나은 방식을 떠올릴 수 있지 않나. 관심을 쏟지 않으면 결국 다 잃게 된다. 그렇기에 예술로 연대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아카이빙을 하는 이유는. 

 

김현주  나는 사람이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있을 때는 지표(地表) 위에 있지만 죽은 후에는 그 아래로 내려간다. 수많은 생명에 녹아들어 나무가 되고 산이 되고 풀이 된다. 커다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이 삶 되고, 삶이 죽음 되는 식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살아있을 때 지표 위만 보기 쉽다. 무엇이 지표를 받드는지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고 여긴다. 지표 아래 존재하는 것들이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는지, 잔뿌리를 봐야 한다. 시선을 낮출 때 특정한 존재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아카이빙은 보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지표 아래 심층적인 영역을 향한다.

 

  타자와 상호작용하려면 관찰이 필수다. 이때, 관찰의 목표를 응시와 대화 중 무엇으로 정할지가 중요하다. 뚫어져라 보기만 하면 불쾌할 뿐 그 자체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없다. 아카이빙은 단순히 응시를 넘어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대화하려 한다. 그들이 남긴 메시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모으는 거다. 처음엔 수치스럽고 쓸데없다고 말하던 주민들도 작업물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술가는 언어로 형언하기 힘든 것들을 다른 감각을 사용해 표현하는 이들이다. 특정한 존재와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길 갈망하는 사람들. 이곳이 기지촌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와서 촬영하면 온전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 타자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고 싶다면,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아카이빙을 하나의 축으로 삼는 미시사(微視史)가 좋다는 기자에게, 전공인 사회복지를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둘은 함께 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상세히 설명한다면.

 

김현주  사회복지의 역할은 물질적 지원을 넘어 개개인의 자립을 돕는 것이다. 어떻게 이 삶을 행복하게 살 것인지, 고민하고 그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대신 예술은 물질적 지원이 아닌 정서적 힘을 준다. 하다못해 ‘내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평생 고민해 본 적 없이 살아온 이들도 있다. 예술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현실과 맞닿은 학문이라는 데 사회복지의 의의가 있는 것 같다. 말했듯이 예술과 지역을 엮어서 생각할 필요도.

 

김현주  사회복지사들이 집마다 방문하기보다 거점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그곳에서 꾸준히 지역 주민들을 만나면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또 거점공간에서 주민들이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보면 후에 사회복지사가 없어도 사람들이 잘 지내지 않겠나. 서로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만드는 게 복지의 역할 아닐까.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거점공간을 만드는 데 문화예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 공동체가 자생적으로 가질 수 없는 조정 능력이 예술엔 있다. 예술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역할을 줄 수 있기에, 지역 주민과 밀착된 예술 활동이 복지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매개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김현주  일전에 독거노인 분들과 함께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년 동안 활동을 진행하고 지역에 거점공간을 만들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긴 시간을 투자할수록 단단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그래야 사회복지사가 떠나도 공동체가 이어지니까.

 

김현주 할머니들께서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카네이션 그림을 보내며 연락하신다. 여러 곳에서 이런 실험을 하다보니 예술이 가진 순기능이 느껴진다. 예술은 지역사회를, 주민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다만 민간에 전부 맡기는 방식으로는 예술가들이 지쳐 나가떨어진다. 국가와 제도의 힘을 빌리면 지속할 유인이 생긴다.

 

 

사회적 약자를 복지 제도의 수혜자나 ‘그들’로 타자화하지 않고, 개인이 처한 구체적 맥락을 포착하려는 노력 자체도 중요할 것 같다.

 

김현주  사회복지사는 약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지 않고, 개개인의 목소리에 주목해 이들이 어떻게 삶의 주체로 살아갈지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문화정책과 관련해 수업 요청을 받는다. 그때마다 지역에 와서, 직접 걸어보라고 강조한다. 겉으로는 기지촌 동네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지역 주민에게 이야기를 듣고 길을 거닐다 보면 다양한 삶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그런 경험이 현실을 바꾸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스스로를 ‘확장된 활동가’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동네의 안내자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김현주  누군가는 동네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영화 《기생충》(2019)도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 영화가 한국사회의 사각지대를 가시화한 점도 있다. 좋은 방향성을 가지고 잘 매개하면 그 영향이 지역에 돌아온다고 믿는다. 어렵지만 계속해야 한다. 거점공간을 매개로 빼뻘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길 바란다.

*빈곤 포르노: 빈곤의 근원적 원인을 감춘 채 자극적인 묘사에만 집중한 촬영물 

 

 

  두레방 김은진 원장은 의정부시가 이전을 요구한 이후 김현주 작가가 아카이빙을 제안한 덕에, 창고를 열어 그간의 자료를 정리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김 원장은 많은 이가 전시회에 찾아오자 두레방 언니들 역시 변했다며, “목요시위에 참석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던 이들이 직접 나서서 전시를 안내하고, 인터뷰에 과감하게 응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때로는 숨기고 싶었고, 들여다보면 내내 아픔투성이었지만, 수치심과 낙인에만 가두기엔 이 삶이 너무 거대하고 아름답다는 걸 전시를 준비하며 서서히 받아들인 것이다. 김 작가가 염원한 ‘예술이 삶을 바꾸는 순간’일 테다. 이처럼 작은 거품의 웅성거림을 기억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두레방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http://www.snujn.com/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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